4성제四聖諦 - 팔정도八正道
4성제(四聖諦)
고성제(苦聖諦)
고성제라는 것은 인생은 고(苦)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고(苦, duhkha)를 일반적으로 괴로움, 고통, 슬픔 등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실은 이것보다 휠씬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 생리적인 고통 또는 일상적인 불안이나 고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존에 따르는 모든 괴로움을 총망라한 것이다.
고(苦)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 사고(四苦) 또는 팔고(八苦)를 말한다.
태어남(生),
늙음(老),
병듦(病),
죽음(死)
등의 네 가지 고(苦)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怨憎會苦],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求不得苦],
오온(五蘊)의 집착에서 생기는 고[五取蘊苦]
등의 네 가지를 합쳐서 여덟 가지 고(苦)가 된다.
또한 고(苦)를 성질에 따라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등 3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고고(苦苦)란 주로 육체적인 고통을 말한다. 보통 고통이라고 하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괴고(壞苦)란 파괴나 멸망 등에서 느끼는 정신적 고뇌를 말한다.
행고(行苦)란 현상세계가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느끼는 고(苦)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 앞에서 느끼게 되는 괴로움이다.
집성제(集聖諦)
집(集)이란 samudaya라는 말을 번역한 것으로 불러 모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집성제에서는 고(苦)를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다.
근원적인 고(苦)는 갈애(渴愛, tanha)와 무명(無明)이다.
정감(情感)의 측면에서는 갈애가 가장 큰 원인이고,
이지(理知)적 측면에서는 무명(無明)이 가장 큰 원인이다.
갈애(渴愛)는 모든 욕망의 근저를 이루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은 욕망, 인간의 불만을 조성하는 욕망이다.
이것을 갈애라고 한 것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을 때의 강렬한 욕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갈애로 인해 인간의 생존이 계속된다.
갈애는 구체적으로 욕애(欲愛), 유애(有愛), 무유애(無有愛) 등 세 가지로 나눈다.
욕애(欲愛)란 오욕(五欲) 즉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리킨다.
유애(有愛)란 존재에 대한 욕망을 가리킨다. 오래도록 살고 싶다든지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나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등의 욕망이다.
무유애(無有愛)는 생존이 단절되기 바라는 욕망을 가리킨다.
멸성제(滅聖諦)
멸성제란 고(苦)는 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고(苦)에는 갈애(渴愛)와 무명(無明) 같은 원인으로 인해 생긴 것이므로 그 원인을 초극하면 바로 그 경지가 열반(涅槃)이며, 해탈(解脫)이라는 것이다.
열반(涅槃, nirvana)은 소멸의 의미를 가진 말로서 고(苦)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고(苦)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고(苦)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이다.
이는 마음이 갈애(渴愛)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이므로 해탈(解脫, moksa)의 경지이기도 하다.
마음 중에서 지혜가 먼저 해탈하는 것을 혜(慧)해탈이라고 하며,
또한 번뇌를 모두 멸하여 마음 전체가 해탈하는 것을 심(心)해탈이라고 한다.
현재의 오온(五蘊)을 그대로 지닌 채로, 즉 살아있는 동안에 성취하는 열반을 생존의 근원이 남아있는 열반 즉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이라고 한다. 유여의열반을 이룬 사람이 죽으면 다시 육체를 받아서 태어나지 않게 된다. 이것을 생존의 근원이 남아있지 않는 열반, 즉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라고 한다. 무여의열반은 완전한 열반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苦)가 모두 소멸된 상태의 열반이다.
도성제(道聖諦)
도성제란 고(苦)를 멸하는 데는 일정한 수행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道)란 열반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것은 중도(中道)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양극단을 떠난 길이다. 즉 지나치게 쾌락적인 생활도 극단적인 고행생활도 아닌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상태의 길을 말한다.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도 극단적인 고행이나 지나친 쾌락을 피하고 중도(中道)를 실천해야 한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팔정도(八正道)이다.
팔정도(八正道)는 여덟 가지 바른 길로서,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있다.
① 정견(正見):올바로 보는 것.
② 정사(正思:正思惟):올바로 생각하는 것.
③ 정어(正語):올바로 말하는 것.
④ 정업(正業):올바로 행동하는 것.
⑤ 정명(正命):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⑥ 정근(正勤:正精進):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⑦ 정념(正念):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⑧ 정정(正定):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정견(正見)은 올바른 견해로서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정사(正思)는 바른 생각, 즉 바른 마음가짐이다. 즉 탐욕스러운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온화한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정어(正語)는 올바른 말이다. 거짓말[妄語], 이간시키는 말[兩說], 욕하는 말[惡口], 꾸며대는 말[綺語]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 성실한 말,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다.
정업(正業)은 올바른 행위이다. 살생, 도둑질, 음란한 짓을 하지 않고 다른 존재들의 목숨을 구해주고 보시하고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정명(正命)은 올바른 생활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구하는 것이다. 특히 출가 수행자의 경우에는 재가신도의 바른 신앙에서 우러나는 보시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다.
정정진(正精進)은 올바른 노력이다. 이미 생긴 선(善)은 더욱 자라도록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善)은 생기도록 노력하고, 이미 생긴 악(惡)은 끊도록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惡)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정념(正念)은 올바른 주의력, 올바른 기억이며 마음을 항상 올바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이나 그 주변의 것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기억해서 반성하고 바른 의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정정(正定)은 마음의 통일 즉 올바른 선정(禪定)이다. 정(定)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이 선이기 때문에 때로는 이를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PHOTO BY 법기스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