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商B.C 1711-1066) 주(周 B.C1066-256) 시대부터 운남에 살던 복족 사람들은 차를 심었고 찻잎을 생산/재배하였는데 이것이 보이차에 대한 시조이다.
문헌에는 복족 사람들이 상왕(상나라왕)에게 작은 개를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상나라때 이미 복족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운남의 차의 고향이며 3천년 전 상주시대부터 운남 복족 사람들이 이미 차잎을 생산하였다고 본다. 복족인의 조상은 조상이 운남에서 대대로 살아온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고 차를 심을 수 있는 적당한 조건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의 吳晉(오진)은 그의 책 본초 중에서 "고차(苦茶)는 일명 茶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선이라고 부르며 또 하나는 유동이라고 부르는데 익주군 골짜기와 산릉성에서 난다. 겨울에도 죽지 않으며 3월3일에 따서 말리 운다"라고 기재 되어 있는 오진이 말한 茶자는 글자의 뜻에 따르면 곧 찻잎이어서 운남이 한나라 시기에 차를 생산하였다는 것을 실증하는 셈이다.
삼국시대에 무후(武候)가 종자를 선사하였다고 하여 1700년 전의 음력 7월 23일에 보이차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다산에는 다왕수가 있고 다섯산의 것보다도 유독 크다. 본래는 무후가 종사자로 선사한 것인데 지금까지 이곳 사람들은 제사지내고 있다고 단췌(檀萃)는 그의 진해 우형기에 기록하고 있다. 무후는 서기 225년 남나산에 와서 보이차 나무를 심었었고 그로부터 전해지고 있다는데 현재로서는 고증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곳 소수민족들은 대대로 차의 조상으로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88년 12월 16일 운남일보에 공명다산은 삼국시대에 맹해 남유산을 지날 때 병사들이 풍토가 맞지 않아서 눈병이 났었는데 제갈공명이 지팡이를 산 위에 꽂았더니 즉시 차나무로 변하여 잎이 자라났으며 사병들은 잎차를 따서 끓여 마시고 병이 나았다. 이후 남유산을 공명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이후 남유산을 공명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또 보이현의 남동쪽의 무영수산(武影樹山)이 있었고 그 망지산은 공명이 화살을 두는 곳이었으며 산에는 제풍태가 있고 산위에 큰 차나무가 있는 것은 무후가 종자를 서나한 것이어서 이민족들은 제사 지낸다고 말하고 있다. 운남의 6대 다산의 하나인 유락산도 공명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주민들은 매년 음력7월23일 공명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공명들을 걸어놓은 행사를 거행하는데 다조회라고 전해지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원래 풍문으로 전해지고 있는 말이지만 보이차의 정확한 역사적 기재가 없었을 때에는 아주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보이차에는 그 화려한 명성에 맞게 황제가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운남 보이촌 남쪽, 수립산 속의 마을에는 하니족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의 이름은 왕형, 갓마흔이 넘은 나이로 그의 아내 파한과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왕형은 조그맣게 차밭을 일구며 아내와 함께 관리하고 있었고 나날이 비옥해지고 찻잎도 잘 자랐다. 이들 부부가 기른 차는 특별하여 노인이 마시면 기운이 나고, 임산부가 마시면 순산을 하며, 아가씨가 마시면 이뻐지고 병자가 마시면 낫는다는 신비한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후덕한 왕형부부는 집을 방문한 손님께 차를 대접하였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차를 나누어 주어 집안에는 손님이 끊일 날이 없었다.이런 소문이 관아에까지 퍼져 이곳 관리는 차를 얻을 욕심으로 하인들을 끌고 왕형의 집을 찾아왔다.이 때 왕형은 찻잎을 정성스레 비비고 있었다. 관리가 와도 무시하고 차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현명한 아내 파한은 관리에게 예우를 하지 않으면 후에 화가 미칠 것을 짐작하고 정성스레 차를 달여 관리에게 대접하였다. 관리가 차를 마시자 향기로운 기운이 심장까지 스미는 동시에 몸 속의 기림기가 빠져 나가는 듯한 기운을 느꼈다. 관리는 정말 좋은 차라며 입이 닳도록 칭찬했으나, 왕형은 묵묵히 차만 만들고 있었다. 차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관리는 왕형의 건방진 태도에 괘념치 않고 차밭을 둘러보고 차밭을 통째로 사겠다고 하자 왕형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관리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부인이 집에 있는 차를 모두 꺼내 바치며 사정을 하고 용서를 구하자 노여움을 풀고 관리는 돌아가면서 은 두냥을 주면서 일년에 이백 바구니의 차를 만들어 바치라고 명령하고 돌아갔다. 위기를 모면한 왕형부부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한편 이 茶를 얻은 관리는 상관에게 차를 바쳐 포상을 받으려고 제일 높은 상관에게 바쳤다. 이 차를 맛본 상관은 운남성의 도독에게 바치고 이 도독은 다시 황제에게 바쳤다. 이리하여 황제가 이 차를 맛보고 차를 마신 후 눈이 맑아졌다고 神茶라고 탄복하여 이름을 보이차라고 지어 매년 공납토록 하였으며 왕형의 차밭은 관의 관할로 되고 차 재배 기술 또한 널리 확산시키어 명차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862년에 반작이 외교사절로 운남의 남소지에 갔다. 그가 쓴 만서의 제 7권중에는 차는 은생성 지경의 여러 산에서 나고 각기 거두어 들여 일정한 제다법이 없었다.
몽사(蒙舍;옛날 중국의 남방민족의 호칭)사람들이 산초나무,생강,계피나무와 함께 끓여서 마신다는 기재가 있었다. 고증에 의하면 은생성은 지금의 운남성 남부의 景東,思茅와 써쌍판납일대이다. 이 일대는 이미 차가 생산되었고 또 5백여리 거리 밖으로 판매 공급되어서 이 부근의 몽사(지금 운남성의 외산<巍山>), 남동현 일대의 만족들이 마셨다. 이것은 당시기에 이미 차엽이 생산되었고, 또 운송 판매의 상업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은생성에서 그 당시에 생산한 차가 어떤 차엽인가에 관해서는 고증할 길이 없다. 그러나 운남의 지리적 환경 및 고대 차나무 연구로부터 은생성의 차는 마땅히 운남의 대엽종차의 종자이고 보이차의 종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생성에서 나는 차엽은 당연히 보이차의 선조이어야 한다. 이때문에 청나라의 阮福은 보이차 다기중에서 "보이차는 고대에는 은생부에 속하였고 서번에서 사용되는 보이차는 당나라때부터 시자괴었다." 고 말하였다. 우리와 완복의 견해는 같아서 당나라 때 은생성에 이미 보이차가 있었다. 보이차는 일찍 당나라 때 멀리 서번에 까지 팔렸기 때문에 그 시기의 서남의 비단길을 실제로는 당연히 비단과 차의 길이라고 고쳐야 정확할 것이다.
송나라의 이석은 속박물지책에서 차는 은생의 여러 산들에서 나고 산초나무와 생강을 섞어서 끓여 마신다고 기재하였다. 이 말은 당나라의 번작(樊綽)의 기재와 대동소이하여 마치 그의 견해를 인용한 듯 하다. 일반적으로 송나라때에도 운남성 차엽은 고정된 이름이 없었다.
보이차는 이미 당나라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당나라의 다성 육우가 다경중 13개 성 42개 주의 명차는 소개하면서 유독 운남성 은생성의 보이차만 빼버렷다. 차 문화역사의 가도에서 보면 차는 당나라에서 흥기하고 송나라에서 성행하였다. 중국 차엽의 흥성은 중화민족이 차를 마시는 것에 대한 풍습 외에 더욱 중요한 점은 송나라의 차문화 발달에 높은 기여를 하였기 때문이다. 차엽으로써 서번의 말을 쉽게 교환하였고, 서방에 대한 상업거래의 번영을 개척한 것은 보이차의 공로라고 할 수 있으며 서번이 보차를 마신다는 이 한마디의 말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송나라의 시인 왕우칭은 보이차를 찬미하는 한 수의 다시를 썻었다. "아홉 원(고대의 농지의 면적단위 1원은 30무)은 난초의 향기보다 향기롭고 음력 구월의 밝은 달보다 둥글도다. 없어질까 걱정하며 아껴두지만 백발부모 봉양하기 위해 남겨 두노라." 원나라는 중국 차문화의 전수 계승의 기복 전황의 과정 중에서 평범하게 보이는 하난의 왕보이나 전체적인 보이차 문화를 말하면 원나라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는 관습상 보이차의 기원을 삼국시기의 본래 무후가 종자로 선사하였다로 보는데 사실 보이차의 뿌리는 중국차를 마신 최초의 사람까지 올라가면 어느 그루 차나무의 찻잎인가에는 관계없이 운남대엽종 차종의 후대일 것이며 다시 말하면 보이차일 것이다. 왜냐하면 운남 보이차는 대엽종차를 쓰고 가장 원시 차 종자의 차청(정화된 찻잎)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때문에 중국 차의 역사는 곧 보이차의 역사와 같다. 그러나 원명 이전에 마시던 보이차는 모두 낙관이 없는 보이차였는데 그 실물은 있으나 고정된 명칭이 없어서 보이차를 즐겨마시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면 하나의 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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